서울시극단 창작대본 공모에 응모한 작품 수는 모두 40편이며, 이 중 기발표작이거나 분량이 부족한 작품을
제외한 38편을 심사하였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가, 즉 동시대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또한 새로운 극장의 출발에 걸맞는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 이야기인가, 주제의 깊이, 사회적 문제의식,
무대 미학 등 연극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을 살린 작품인가를 두고 심층 토론했다.
아울러 젠더이슈에 대한 이해가 있는 작품인지도 중요한 심사기준이 되었다.
많은 작품들이 각각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대 문제와 사회현상들에 대해 피상적이거나,
전형적인 틀에 머물러 어떤 사유와 성찰로 연결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오랜 응시를 통해 빚어진
새로운 시각과 통찰이 담긴 작품을 찾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장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황*은 작가의 <사막 속의 흰개미>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사막 속의 흰개미>는 이미 오래 전부터 흰개미 떼의 서식지가 되어버린 3백년 된 고택을 배경으로
무너져가는 집의 실체와 그것을 애써 지키려는 사람들 간의 충돌을 담담히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고택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던 것이 실은 고택 아래까지 침투해서 자리를 잡은
흰개미들의 거대한 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내가 가장 부정하는 것이 결국 나를 지탱하게 한다’는
역설을 설득시킨다. 흰개미가 가진 상징성과 위태롭게 서 있는 집의 구체성이 좀 더 극의 서사에 녹아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대본의 수정과정을 통해 충분히 보완되리라 믿는다.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 새로운 극장을 짓고 그 문을 열기 위해 기쁨과 희망만을 전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가 지닌 불안과 위태로움, 허위와 가식의 역사를 대면하고 성찰할 때 비로소 극장의 공기는
우리에게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줄 것이다. 신인작가로서 드물게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유와 자신만의 독특한 연극성을 일군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응모해 주신
모든 작가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심사위원 김광보, 노이정, 고연옥, 김은성